9장 1-7절

9 1-7

1-2.『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바로에게 들어가서 그에게 이르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 네가 만일 그들 보내기를 거절하고 억지로 잡아 두면』

וַיֹּ֤אמֶר יְהוָה֙ אֶל־מֹשֶׁ֔ה בֹּ֖א אֶל־פַּרְעֹ֑ה וְדִבַּרְתָּ֣ אֵלָ֗יו כֹּֽה־אָמַ֤ר יְהוָה֙ אֱלֹהֵ֣י הָֽעִבְרִ֔ים שַׁלַּ֥ח אֶת־עַמִּ֖י וְיַֽעַבְדֻֽנִי׃

כִּ֛י אִם־מָאֵ֥ן אַתָּ֖ה לְשַׁלֵּ֑חַ וְעֹודְךָ֖ מַחֲזִ֥יק בָּֽם׃

바로를 향해()라는 말은 바로 안으로 라는 의미다. 바로 안으로 들어간다는 말은 율법 안으로 들어간다는 의미다. 이와 같이 말하라는 것은 율법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라는 것을 말하라는 것이다. 백성을 보내어 나를 섬기게 하라는 것이다. 율법 안에는 세 절기를 지켜서 율법으로부터, 세상으로부터 자유하게 되는 생명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라고 하는 말씀을 율법에 기록했다는 것이다. 모세오경이 보여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이다. 만일 율법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을 보내지 아니하면 마음이 강팍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오늘날도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율법으로 자기를 지켜 의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마음이 강팍한 자들인 것이다. 율법을 통해서 괴로움과 고통을 깨달아야만 하는 것이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전혀 고통을 느끼지 않았다. 이러게 되면 하나님이 말씀하는 것이다.

 

3.『여호와의 손이 들에있는 네 생축(미크네) 곧 말(수르)과 나귀(하모르)와 약대(가멜)와 우(바카르)(쩨온)에게 더하리니 심한 악질이 있을 것이며』

הִנֵּ֨ה יַד־יְהוָ֜ה הֹויָ֗ה בְּמִקְנְךָ֙ אֲשֶׁ֣ר בַּשָּׂדֶ֔ה בַּסּוּסִ֤ים בַּֽחֲמֹרִים֙ בַּגְּמַלִּ֔ים בַּבָּקָ֖ר וּבַצֹּ֑אן דֶּ֖בֶר כָּבֵ֥ד מְאֹֽד

베미크네카(בְּמִקְנְךָ֙ 기본형은 미크네)는 소유하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전도서 27절에서 『남녀 노비들을 사기도 하였고 나를 위하여 집에서 종들을 낳기도 하였으며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들보다도 내가 소와 양 떼의 소유를 더 많이 가졌으며(미크네)』가축의 죽음은 소유를 빼앗기는 것이다.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라는 것이다. 버리는 개념이다. 세상의 것은 버리고, 하늘의 것을 소유하라는 것이다.

악질은 전염병(데베르)을 의미한다. 데베르는 다바르에서 유래되었다. 다바르는 문 안으로 들어가고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데베르의 사전적 의미는 흑사병으로 되어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변질되어 흑사병처럼 되면 죽는다는 것이다. 즉 내가 원하는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데베르가 없게 된다. 즉 영적으로 죽지 않는 생명이라는 말이다. 흑사병과 같은 병자들은 생명을 가질 수 없다. 예수님이 오셨을 때, 문둥병자, 십이년된 혈루병 환자, 베데스데 못가의 삼십팔년된 병자 등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셨다. 이 말은 장차 영적으로 병든 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라는 것을 말해주신다. 십이년 된 혈루병 환자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상징하며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가 다 끝난 뒤에 고침을 받는다는 것이다. 삼십팔년된 병자는 이스라엘이 사십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하게 된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시내산에서 머문 이년을 제외하고 광야 38년이다. 아버지를 떠난 것을 깨닫고 돌이키는 자들은 카탄들이고, 병이 들었지만, 주님을 만나 고침을 받은 자들은 가돌들이 되는 것이다.

미크네는 성전들이 말씀을 이루기 위해 물고기로 분리된 존재들이다 라는 의미다. 미크네는 모든 살아있는 것을 다 포함한다. 미크네 중 소와 양은 되새김을 하고 굽도 갈라져 있다. 이런 짐승들은 정한 짐승이다. 낙타 말 나귀는 짐을 싣고 다니는 율법을 의미한다. 그런데 되새김을 한다. 그러나 굽이 갈라지지 않았다. 이들은 레위기에 의하면 부정한 짐승으로 분류된다. 레위기 11 4절에서『새김질하는 것이나 굽이 갈라진 짐승 중에도 너희가 먹지 못할 것은 이러하니 약대는 새김질은 하되 굽이 갈라지지 아니하였으므로 너희에게 부정하고』 미크네를 말하면서 대표적으로 정한 짐승 두가지와 부정한 짐승 세가지를 들고 있다.

다섯은 하나님의 말씀을 비추어서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이 나온다는 의미다. 부정한 짐승은 되새김질하는 말씀을 주셨는데, 그것이 자기에게 머물러 있는 것이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율법)을 가졌는데, 자기 생각으로만 판단하는 자들인 것이다. 즉 생명나무를 발견하지 못하는 자들이다.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왜곡하는 자들은 결국 죽을 수 밖에 없는 자들이 된다. 그런데 죽지 않는 자들이 나온다. 미크네는 동물들을 표현했지만 모두가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4.『여호와가 이스라엘의 생축과 애굽의 생축을 구별하리니 이스라엘 자손에 속한 것은 하나도 죽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고』

וְהִפְלָ֣ה יְהוָ֔ה בֵּ֚ין מִקְנֵ֣ה יִשְׂרָאֵ֔ל וּבֵ֖ין מִקְנֵ֣ה מִצְרָ֑יִם וְלֹ֥א יָמ֛וּת מִכָּל־לִבְנֵ֥י יִשְׂרָאֵ֖ל דָּבָֽר׃

이스라엘과 애굽의 가축을 구별하는데, 애굽에 있는 가축은 사이 사이에 구별하신다고 했다. 모든 세상에 온 자들은 사이 사이에 카탄과 가돌이 나온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생축들은 모두 모두 죽지않고 죽지 않는다 라는 것이다. 카탄들 모두, 그리고 또 카탄들 모두가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첫사람 아담 안에서 구원받는 자는 구원받아서 죽지 않고, 마지막 아담 안에서 구원받는 자들도 죽지 않고 구원받는다는 말이다.

 

5.『여호와께서 기한을 정하여(모에드) 가라사대 여호와가 내일(마하르) 이 땅에서 이 일을 행하리라 하시더니』

וַיָּ֥שֶׂם יְהוָ֖ה מֹועֵ֣ד לֵאמֹ֑ר מָחָ֗ר יַעֲשֶׂ֧ה יְהוָ֛ה הַדָּבָ֥ר הַזֶּ֖ה בָּאָֽרֶץ׃

모에드는 카탄과 악질을 구별하는 일을 두셨다(). 땅의 이것 저것의 다바르를 여호와께서 내일 행하리라 라고 말씀하셨다. 다바르(문으로 들어가는 일)하는 일을 내일 말씀 안에서 행한다는 것이다. 내일이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 내일이 아니라, 내일, 또 그 다음날 계속해서 이런 일들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말씀 안에서 후의 일이 나타나실 것이라는 것이다.

 

6.『이튿날(모하라트)에 여호와께서 이 일을 행하시니 애굽의 모든 생축은 죽었으나 이스라엘 자손의 생축은 하나도 죽지 아니한지라』

וַיַּ֨עַשׂ יְהוָ֜ה אֶת־הַדָּבָ֤ר הַזֶּה֙ מִֽמָּחֳרָ֔ת וַיָּ֕מָת כֹּ֖ל מִקְנֵ֣ה מִצְרָ֑יִם וּמִמִּקְנֵ֥ה בְנֵֽי־יִשְׂרָאֵ֖ל לֹא־מֵ֥ת אֶחָֽד׃

모하라트는 말씀 안에서 사백세겔을 내는 날을 의미한다. 이것 저것의 다바르를 행하시니 애굽의 모든 미크네들은 죽었으나 이스라엘 자손의 미크네는 하나도 죽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이스라엘은 영적인 이스라엘을 의미한다. 표면적 유대인이 아니라 이면적 유대인이라는 것이다. 죽지 않는 자들은 말씀 안에서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결산해 보니 카탄과 가돌들이 나온다는 것이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도 결산이 있다. 말씀 안에서 사백세겔을 내었느냐 안내었느냐의 차이다.

 

7.『바로가 보내어(샬라흐) 본즉 이스라엘의 생축은 하나도 죽지 아니하였더라 그러나 바로의 마음이 완강하여 백성을 보내지 아니하니라』

וַיִּשְׁלַ֣ח פַּרְעֹ֔ה וְהִנֵּ֗ה לֹא־מֵ֛ת מִמִּקְנֵ֥ה יִשְׂרָאֵ֖ל עַד־אֶחָ֑ד וַיִּכְבַּד֙ לֵ֣ב פַּרְעֹ֔ה וְלֹ֥א שִׁלַּ֖ח אֶת־הָעָֽם׃ פ

바로가 보내어 보고 또 보니 이스라엘의 미크네는 죽지 않은지라 바로의 마음이 하나같이(에하드) 게속하여 강팍하여 백성을 보내지 않고 않았다 라고 되어있다. 에하드는 하나라는 의미다. 전에 강팍했던 마음과 하나라는 것이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기 전에 사람들을 세례요한과 예수님께 많이 보내어 물어보게 했다. 세례요한은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다. 광야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외치는 것이다. 이사야 40 3절에서『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인간들이 사막과 같은 광야가 될 때 하나님이 말씀허실 것이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광야에는 마태복음 3 3절에서『저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하였느니라』

광야의 외치는 소리는 율법이고 율법 안에는 세 절기가 있는데, 출애굽기 5 1절에서『후에 모세와 아론이 가서 바로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이다』라고 말했다. 세 절기를 지키라는 것이다. 지키라는 것은 절기의 열매를 가져오라는 것이다. 절기의 열매를 가지고 온다는 것은 율법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것이다.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증거했다는 말은 이제 율법의 기한이 다 되었다는 것이다. 누가복음 16 16절에서『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 하느니라』율법과 선지자(~세례요한)는 그리스도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그 역할이 예수님이 오시므로 끝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받아드리지 않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도 믿지 않았지만 가나안 땅 앞에서도 믿지 않았고, 예수님의 모든 표적에서도 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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