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1-7절.
6장 1-7절.
6: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제(아타) 내가 바로에게 하는 일을 네가 보리라(라아) 강한 손을 더하므로 바로가 그들을 보내리라(샬라흐) 강한 손을 더하므로 바로가 그들을 그 땅에서 쫓아내리라』
ַיֹּ֤אמֶר יְהוָה֙ אֶל־מֹשֶׁ֔ה עַתָּ֣ה תִרְאֶ֔ה אֲשֶׁ֥ר אֶֽעֱשֶׂ֖ה לְפַרְעֹ֑ה כִּ֣י בְיָ֤ד חֲזָקָה֙ יְשַׁלְּחֵ֔ם וּבְיָ֣ד חֲזָקָ֔ה יְגָרְשֵׁ֖ם מֵאַרְצֹֽו׃
ס
히브리어는 이제 내가 바로에게 행하는(에에쉐 אֶֽעֱשֶׂ֖ה:기본형은 아사) 것을 보리라 라고 되어있다. 아사는 성취하다 라는 의미다. 하나님의 강한 손으로 보내실 것이며,『땅에서 쫒아내리라』에서 애굽 땅에서 가나안(하나님 나라를 상징)으로 쫒겨난다는 말이다. 강한 손은 죽음 가운데 살리시는 것을 의미한다. 사망 가운데서 생명을 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애굽(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로 쫒아내는 것이 강한 손이다. 생명은 죽어야 얻을 수 있다. 열가지 재앙(쉐페트)이며, 열번째 재앙은
장자가 죽는 것이다. 결국 모든 자가 죽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죽음
만이 생명이 된다.
6:2.『하나님(엘로힘)이 모세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로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
וַיְדַבֵּ֥ר אֱלֹהִ֖ים אֶל־מֹשֶׁ֑ה וַיֹּ֥אמֶר אֵלָ֖יו אֲנִ֥י יְהוָֽה׃
여기서 나는 여호와라 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 אֵלָ֖יו אֲנִ֥י יְהוָֽה׃(』(엘로야니
야훼)라고 되어 있다. “나는 그에게 여호와이니라” 라는 것이다. 창세기에서 여호와 라는 말이 나오기는 하지만, 이는 사람들에 의해책으로
표현되었고, 하나님이 직접 사람들에게 나는 여호와라고 직접 말한 것은 없었다 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세에게만 미디안 광야 떨기 나무에서 직접 말씀하셨다. 창세기
17장 1절에서『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엘
샤다이)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성경을 읽는 독자들은 여호와라는 이름을 알고 있었으므로
이렇게 표현했다. 아마도 성경을 필사하는 과정에서 표기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성경의 초기에는 엘로 표기되었을 것이다.
창세기 35장 11절에서『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엘 샤다이)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엘이라는 말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곳이 창세기 14장 19절에서는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엘욘) 하나님(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그래서 모세 이전에는 하나님을 엘로 표기하고 모세 이후에는 하나님의
이름(여호와)이 등장하는 것이다. (물론 텍스 상에는 창세기 17장 1절과 같이 이후 필사 과정에서 수정하여 옮겼을 것이다.) 이는 창세기
1장 1절에서도 엘로힘으로 등장한다. 엘은 단수이지만, 엘로힘은 복수이다. 엘은 보이지도 않고 알 수 없는 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엘로힘은
삼위일체를 표현하는 것으로, 알 수도 없는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했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창세기 1장은 엘로힘의 구속 사역인데,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요한복음 10장
34절에서『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율법에 기록된 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ἀπεκρίθη αὐτοῖς [ὁ] Ἰησοῦς· οὐκ ἔστιν γεγραμμένον ἐν τῷ νόμῳ ὑμῶν ὅτι ἐγὼ εἶπα· θεοί ἐστε 』신이라고 표현되었으나 신들(데오이 θεοί 기본형은 데오스)이다. 이 데오스가 히브리어의 엘로힘이다. 그리스도가 엘로힘이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도 다 엘로힘이 된다. 그래서 엘로힘은 엘의 짝이라는 말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보이는
하나님으로 나타난 것이다. 보이는 하나님이 창조사역을 하시고 요한복음에서는 빛과 말씀으로 표현한 것이다.
엘로힘은 고유명사가 아닌 일반명사로 사용된다. 사람들이 부르는 신(하나님)이라는
이름인 것이다. 여호와(야훼)는 고유명사이다. 하나님을 일반명사로 알았는데, 고유명사인 여호와로 다가 왔다는 것이다. 여호와 라는 이름은 임재(함께 하는 하나님)의 의미다. 하야
아세르 하야(함께 와서 함께 돌아가는 하나님)이다. 과거로부터 현재 미래에 이르기까지 계속 진행형이다. 영어로는 존재를
나타내는 be 동사에 해당된다. 인간은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면 존재의 가치가 없는 자라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 만이 존재라는 의미를 가진 이름이다.
6:3.『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וָאֵרָ֗א אֶל־אַבְרָהָ֛ם אֶל־יִצְחָ֥ק וְאֶֽל־יַעֲקֹ֖ב בְּאֵ֣ל שַׁדָּ֑י וּשְׁמִ֣י יְהוָ֔ה לֹ֥א נֹודַ֖עְתִּי לָהֶֽם׃
출애굽기 3장 15절에서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하야 아세르 하야』이다. 내가 데리고 왔다가 다시 데리고 가는 하나님이라는 의미다. 그 뒤에는 하야 라는 말만 있으므로 하야가 곧 하야 아세르 하야인 것이다. 나는
여호와라 라는 말은 나는 하야 아세르 하야다 라는 말이고, 아브라함 하나님 이삭 하나님 야곱 하나님이라는
의미다.
아브라함 하나님 이삭 하나님 야곱 하나님은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약속의
하나님이라는 의미다. 약속은 창세기 12장 1-3절에서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
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 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하나님이 이삭에게도 약속하셨다. 창세기 26장 2-4절에서『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 이 땅에
유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비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자손은 씨를 의미하며, 씨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약속하신 내용이다. 창세기 46장 2-4절에서
『밤에 하나님이 이상 중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시고
불러 가라사대 야곱아 야곱아 하시는지라 야곱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비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정녕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하셨더라』
하나님이 여호와라는 이름을 처음 나타내신 것은 출애굽기 3장 14-15절에서 모세에게 나타내신 것이다. 이 여호와 하나님(하야 아세르 하야)이 엘 샤다이 하나님(약속의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약속의
하나님이 여호와로 세상에 내려오셔서 너희를 데려 가실 것이라고 하는 말씀을 하기 위해서 여호와 라는 이름을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언약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는 여호와라는 이름을 알리지 않았다는 말은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그러나 때가 되면 엘로힘과 여호와는 함께 연결된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여호와(야훼) 하나님(엘로힘)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는 것이다. 여호와의 실체가 하나님이라는 이름
속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6:4.『가나안 땅 곧 그들의 우거하는 땅을 주기로 그들과 언약하였더니』
וְגַ֨ם הֲקִמֹ֤תִי אֶת־בְּרִיתִי֙ אִתָּ֔ם לָתֵ֥ת לָהֶ֖ם אֶת־אֶ֣רֶץ כְּנָ֑עַן אֵ֛ת אֶ֥רֶץ מְגֻרֵיהֶ֖ם אֲשֶׁר־גָּ֥רוּ בָֽהּ׃
언약이 등장하므로 여호와께서 역사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히브리어에는 역시(감) 에트
언약(베리트)을 함께 세웠다(쿰)(
וְגַ֨ם הֲקִמֹ֤תִי אֶת־בְּרִיתִי֙ ) 라고 되어있다. 하늘에 속한 언약이라는 의미가 포함되는 것이다. 언약을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세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땅에 데리고 온 모든 자들과 함께 언약을 세운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에 데리고 온 자들에게 다시 데리고 올 것이라는 언약을 하는 것이다. 베리트는 함께 하는 언약을 의미한다. 이 언약을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도 하신 것이다.
『가나안 땅 곧 그들의 우거하는 땅』에서 가나안 땅은 하나님
나라를 준다는 예표다. 역시 또한 이 반복되는데, 그림자
약속과 참 형상의 약속이 되는 것이다. 가나안 땅은 애굽으로부터 분리하여 순례(구르)의 땅이라는 것이다. 구르는
임시로 거주한다는 의미다. 마고르는 마(말씀)가 붙어서 말씀으로 잠시 왔다가 가는 나그네의 삶이라는 것이다. 그게
가나안 땅이라는 것이다. 가나안은 그림자이고 참 형상이 아니다.
6:5.『이제 애굽 사람이 종을 삼은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을 듣고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
וְגַ֣ם׀ אֲנִ֣י שָׁמַ֗עְתִּי אֶֽת־נַאֲקַת֙ בְּנֵ֣י יִשְׂרָאֵ֔ל אֲשֶׁ֥ר מִצְרַ֖יִם מַעֲבִדִ֣ים אֹתָ֑ם וָאֶזְכֹּ֖ר אֶת־בְּרִיתִֽי׃
히브리어로는 “내가 또한 이스라엘 자손들을 애굽에서 아바드(경작하는)하는 신음소리를 듣고 언약(베리트)을
기억하노라” 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분리되어져야 할 이스라엘이다. 하나님이 이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율법을 주었다. 율법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다. 모든 사람들이 생명나무에 대해서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스라엘게는 생명나무가 보이게 하려고 괴롭게 하시는 것이다. 계속 율법을 지켜도 결과를 얻을
수 없으므로 부르짖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생명나무를 발견하지 못했다. 신음소리가 나야 하나님이 오시는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고센 땅에서 신음소리를 낸 것이다. 하나님은 영의 고통소리를
듣지 육의 고통소리를 드는 분이 아니다.
영의 고통은 영이 흙 속에 갇히므로 고통소리를 내는 것이다. 영은
하나님 나라에 있어야 하는데, 흙속에 있는 갇힌 것을 의미한다. 이사야 42장 7절에서 『네(그리스도)가
소경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처한 자를 간에서 나오게 하리라』갇힌 자는 흙 속에 갇힌 자를 의미한다. 이사야 61장 1절에서『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 게 놓임을 전파하며』이 말은 메시야에 대한 예언이다. 메시야가
와서 갇힌 자를 풀어주어서 하나님 나라로 되돌리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내가
데리고 왔으니 너희들을 구원하여 데리고 갈 것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데리고 오시고 데리고 가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바로 그리스도인 것이다. 모세가 백성들에게 전한 것은 여호와(하야 아세르 하야)이다. 그래서
모세가 말하기를 하나님이 다시 너희들을 데리고 간다는 것이다. 우리말 번역에서 여호와를 스스로 있는
자로 번역하므로 이런 의미를 알 수 없게 된 것이다.
마태복음 1장 21절에서『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자기 백성은 하나님이 세상에 데리고 온 백성이다. 온 세상 사람들이다. 마태복음 1장 23절에서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 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임마누엘을 파자하면 아인(안식) 멤(말씀) 물고기 이다. 안식의 말씀을 가지고 물고기로 세상에 오신 하나님 이라는 의미다. 그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하나님인 것이다.
임마누엘은 임(안식과 말씀이 함께 있는 것)이라는
단어와 아맘(결합하다 어둡게 되다)이라는 단어의 합성어다. 어둠 가운데 안식의 말씀이 오셔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 라는 의미다. 어둠
가운데 빛을 비추러 하나님이 오신 것을 의미한다. 임마누엘 안에는 첫사람 안에서 데리고 와서 마지막
아담 안에서 데리고 간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마태복음 23장 8-10절에서『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이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시니라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지도자는 하나이니 곧 그리스도니라』이 말은 예수님이 곧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하는데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영의 눈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6:6.『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 내며 그 고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큰 재앙으로 너희를 구속하여』
לָכֵ֞ן אֱמֹ֥ר לִבְנֵֽי־יִשְׂרָאֵל֮ אֲנִ֣י יְהוָה֒ וְהֹוצֵאתִ֣י אֶתְכֶ֗ם מִתַּ֨חַת֙ סִבְלֹ֣ת מִצְרַ֔יִם וְהִצַּלְתִּ֥י אֶתְכֶ֖ם מֵעֲבֹדָתָ֑ם וְגָאַלְתִּ֤י אֶתְכֶם֙ בִּזְרֹ֣ועַ נְטוּיָ֔ה וּבִשְׁפָטִ֖ים גְּדֹלִֽים׃
히브리어 원어로 보면, “나 여호와가 나가서(야차) 애굽의 짐 아래(타하트)에서
구원하며 아보다에서 팔을 뻗어 큰 쉐페트로 무르리라”라는 것이다. 여호와가 나가서 본래 하나님께서 애굽을 통해서 너희에게 준 괴롭게 느끼라고 주신 그 짐 아래서 너희를 구원하겠다는
것이다.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아보다(종의 일을 열심히 하는
것)에서 팔을 뻗어(하나님이 팔을 뻗어서) 큰(가돌) 쉐페트(재앙, 심판)에서 무른다(웨가알티 וְגָאַלְתִּ֤י:기본형은 가알) 는 것이다. 쉐페트는 샤파트에서 유래되었다. 마지막 심판을 의미한다. 무른다(가알)는 말은
대속을 하고 값을 지불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대속을 하고 다 무른다는 것이다. 무른다는 것은 다시 아내가 되거나 친척이 되는 것이다. 룻기에도
보아스가 룻을 아내로 맞이하면서 기업을 무른다(가알)는 내용이
나온다. 하나님이 다시 불러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
내가 너희를 데리고 온 아버지이므로 데리고 간다고 약속했으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기를 “나 여호와가 나가서 애굽의 짐(율법의 짐)아래서 아보다(종에서
구원하는데) 팔(실체의 팔)
제로와(힘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 제로와는 씨라는 단어에서 유래되었으며, 씨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권능으로 뻗어 큰 가돌 심판(쉐페트)으로 무르리라 라고 한 것이다.
에베소서 1장 7절에서『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속량이
가알에 해당된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서『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엑세고라센 ἐξηγόρασεν, 기본형은 엑사고라조)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율법의 저주에서 성도를 가알(헬라어
엑사고라조:속량)해주는 것이다. 심판으로 가알하는 것이다. 심판의 목적은 구속인 것이다.
6:7.『너희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
ְלָקַחְתִּ֨י אֶתְכֶ֥ם לִי֙ לְעָ֔ם וְהָיִ֥יתִי לָכֶ֖ם לֵֽאלֹהִ֑ים וִֽידַעְתֶּ֗ם כִּ֣י אֲנִ֤י יְהוָה֙ אֱלֹ֣הֵיכֶ֔ם הַמֹּוצִ֣יא אֶתְכֶ֔ם מִתַּ֖חַת סִבְלֹ֥ות מִצְרָֽיִם׃
하나님이 무르고 백성을 취하여(하나가 되는 것이다) 하야하고 하야한다는 것이다. 언약의 의미를 나타낸다. 가알의 목적은 내 백성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백성으로 삼으면 하나님은
왕이 된다. 세상 임금인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히지만, 하나님은
백성을 보호하고 사랑하신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것과 같은 개념이다. 하나님이 백성을 아내로 취하는 것과 같은 개념이다. 데리고 온 자들과
하나가 되어서 다시 데리고 간다는 것이다. 그것을 깨닫는 자가 여호와라는 이름을 알게되는 것이다. 하야 아세르 하야를 알게된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1장 51절에서
『또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예수 그리스도께서 데리고 와서 데리고 간다는 것이다. 데리고 와서 데리고 간다는 말은 고린도전서 14장 45절에서도 『기록된바 첫사람 아담은 산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이사야 44장 6절에서도『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속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 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표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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