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5-14절

 

5 5-14

 

5-7.『또 가로되 이제 나라에 이 백성이 많거늘 너희가 그들로 역사를 쉬게 하는도다 하고 바로가 당일에 백성의 간역자들과 패장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백성에게 다시는 벽돌(레베나) 소용의 짚(테벤8401)을 전과 같이 주지 말고 그들로 가서 스스로 줍게 하라』 테벤은 1129에서 유래;본래 의미는 ‘원료’, (특히)(타작하여 ‘썰은’것에서 가축의 먹이로 사용되는)남은 ‘밀집’, 또는 ‘곡식줄기이다. 1129(바나)는 기본어근;‘짓다’(문자적으로, 상징적으로) :- 짓다, 짓기 시작하다, 건축가, 아이들을 얻다, 만들다, 수선하다, 세우다.

표면적으로는 벽돌을 만드는데, 제사를 드리는 일을 하므로 쉬고 일도 제대로 하지 않아 짚을 주지 않는 것이다. 더 심하게 압박하는 것이다. 창세기 113절에서『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자연적인 돌을 대신해서 인간이 만든 벽돌을 대신해서 사용했다. 이사야 910절에서『벽돌이 무너졌으나 우리는 다듬은 돌로 쌓고 뽕나무들이 찍혔으나 우리는 백향목으로 그것을 대신하리라 하는도다』벽돌이 건축 재료로 사용되었는데, 바벨탑도 벽돌로 만들어졌다. 바벨탑은 거짓 성전이다. 거짓 성전을 인간의 노력으로 만든 벽돌로 쌓았다는 말이다. 자연적인 돌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에베소서 220-22절에서『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짚은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짚을 넣어서 만든 벽돌은 단단해서 부숴지지 않는다. 가짜 성전은 이렇게 단단하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우리의 옛사람이라는 가짜 성전도 이렇게 단단하게 세워져 있다.

고린도전서 310-17절에서『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성전은 금과 은으로 세워졌다. 풀과 짚으로 세워진 것은 성전이 아닌 것이다. 그리스도로 터를 세워야 하는데, 가짜 선지자들이 짚과 풀과 같은 것으로 터를 세운다는 것이다. 그래서 짚과 풀로 터를 세우는 것은 인본주의 율법주의 영지주의로 진리의 말씀을 대체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짚은 율법을 상징하는 것이다. 율법을 바라보는 자에게는 죄를 더욱 견고하게 만든다. 창세기 24 25절에서『또 가로되 우리에게 짚과 보리가 족하며 유숙할 곳도 있나이다.』이사야서 65 25절에서『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테벤)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으로 식물을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짚으로 벽돌을 쌓는 일을 버리고, 율법으로, 짚으로 하나님을 만나려는 일을 그만하고, 광야로 나가서 절기를 지키는 일을 하라는 것이다. 예수님도 율법으로부터 자유하라고 말씀하셨다. 벽돌을 쌓는 일을 중단하고 죽으라는 것이다. 즉 율법에 대해서 죽으라는 것이다.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다. 예수님이 오셔서 모든 것을 이루시고 난 다음에는 율법이 더 이상 필요가 없는 것이다. 바로가 짚을 주지 않는 것은 율법의 효력이 끝이 난 것을 의미한다. 스스로 줍게 하라』는 말은 모든 인간에게 자기의 일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게 강팍하게 되는 것이다. 강팍하게 되는 것은 장자가 죽을 때까지다.

 

8. 『또 그들()의 전(태몰)에 만든 벽돌 수효대로 그들로 만들게 하고 감하지 말라 그들이 게으르므로 소리질러 이르기를 우리가 가서 우리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자 하나니』

헴은 후의 복수형으로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를 의미한다. 헴이 되면 사실상 짚은 필요가 없게 된다. 그런데, 헴들이 벽돌을 만드는 것이다. 사람이 만드는 벽돌은 에벤이 아닌 벽돌이 된다. 금이나 은으로 만드는 벽돌은 반석(에벤)이 된다. 하나님이 바로(율법)을 강팍케하는 것은 장자들의 죽음이 나타날 때까지이다. 그래서 짚을 가지고 죽는 날까지 벽돌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에벤을 만들지 못하면서 자신들은 에벤을 만드는 자들이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태몰이라는 말은 세상에서 아버지와 아들과 내가 하나되기 전의 상태를 의미한다. 삼일이 마쳐지기 전이라는 것이다. 삼일이 마쳐지기 전에는 이스라엘이 만들던 방법대로 벽돌을 만드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처음부터 벽돌을 만들었다. 벽돌을 사용하여 만들 때 온전한 집이 되지 못하는 것을 깨달을 때 돌을 사용하게 되고 금이나 은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율법)은 이스라엘이 짚을 가지고 벽돌을 쌓게 한다.

그리고 벽돌을 만드는 방법을 그들의 위에 두고 줄이지 말라 그들을 놓았으므로 그것으로부터 그들이 그 위에 소리쳐 말하기를 떠나서 하나님께 희생을 드린다 라는 것이다. 그들을 놓아주었으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에 오셔서 모든 표적을 보여주시는 것 처럼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든 표적을 보여주셔서 그들이 믿게 하였으므로 그들이 놓임을 받은 것이다. 예수님도 이스라엘 땅에 오셔서 너희들을 놓아주려고 왔다고 말을 하고 사람들을 율법으로 부터 놓아주셨다. 그러므로 율법이 말하기를 그들이 놓였으므로 놓인 것 위에 소리쳐서 말하기를 떠나서 하나님께 희생을 드린다 라고 말을 한다는 것이다. 바로가 그것에 대해서 말을 하는 것이다.

 

9. 『그 사람들의 고역을 무겁게 함으로 수고롭게 하여 그들로 거짓말을 듣지 않게 하라』

오늘날도 수고로운 일을 하므로서 무엇인가 하나님을 위하여 이룬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아니라고 말을 하면 거짓이라고 공격하는 것이다. 그들은 율법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강박감을 가지고 있다. 백성들을 억압한다는 것은 율법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강박감을 주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에벤을 만든다고 착각하지만, 바로(율법)는 벽돌을 더 많이 만들라고 한다. 바로가 더 많이 만들라고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스라엘이 놓였으므로 나갈려고 하는데, 그것은 너희들이 게으르기 때문이다 라고 거짓을 말하게 되는 것이다. 게으르다 라고 표현된 것은 놓였기 때문이다 라는 의미다. 그것이 참 진리의 말이지만, 바로는 거짓된 것으로 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놓아주었다(라파). 그런데, 라파를 번역자들이 게으르다 라고 했다. 그래서 그 말에 초점을 맞추어서 내용이 변하게 된다. 하나님이 그들을 놓아주었으므로, 소리쳐 외치기를『우리가 가서 우리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자 하나니』라고 말을 한 것이다. 오늘날에도 인본주의 율법주의를 거짓이라고 말을 하면 오히려 그것을 더욱 믿으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헴이라고 하지만, 바로는 이들을 에노쉬로 말하는 것이다. 바로가 더 많이 벽돌을 만들도록 억압을 하므로 거짓된(쉐케르) 다바르를 생각하지 않고 않도록 하자 라는 것이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바로는 더 많이 벽돌을 만들게 하면 하나님이 그들을 놓아주었다 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방심하게 되는 것이다. 즉 놓아주었다는 말이 거짓으로 들리겠끔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이스라엘 땅에 오셨는데, 이스라엘은 스스로 오실 메시야를 만들어서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 선택된 백성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도 대부분 교회에서 하나님이 율법에 대해서 놓아주셨다고 말을 하지만, 율법에 따라 스스로 자기의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이다.

 

10-11.『간역자들(쇼테르)과 패장들이 나가서 백성에게 일러 가로되 바로의 말씀에 내가 너희에게 짚을 주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짚을 얻을 곳으로 가서 주우라 너희 일은 조금도 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쇼테르는 율법의 감독자로서, 율법을 지키려는 이스라엘 중에서 율법을 강조하는 자들이다. 짚은 히브리어 테벤으로 타부 베트(성전) (물고기)으로 이루어진 단어다. 사백세겔을 내기 위하여 성전들이 물고기로 온 그 존재들이 먹어야 하는 것이 바로 테벤이다. 그래서 테벤은 율법을 의미하는 것이다.

테벤 앞에 스트롱 코드가 없는 알파벳이 세개 있다. 라메드와 카프 맴(말씀)이다. 아버지와 아들과 하나되는 말씀으로 분리되어져서 말씀으로 마치는 짚이다. 이게 테벤인 것이다. 『너희는 짚을 얻을 곳으로 가서 주우라』이 말은 라메드와 카프와 맴이 붙은 테벤을 취하여 아세르를 찾으라는 것이다. 짚을 주지 않고 벽돌을 예정대로 지으라 라고 말을 해야 하는데, 히브리어에는 짚을 주지 않고 아세르를 찾으라 라고 되어 있는 것이다. 즉 분리되는 문을 찾으라는 것이다. 그래서 아세르(분리하는)하는 다바르 아보다(경작하다라는 아바드에서 유래)를 테벤을 통해서 찾으라는 것이다. 영생하는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마음의 밭을 경작하라는 것이다.

『너희 일은 조금도 감하지 아니하리라』 다바르 아보다를 줄이지 않겠다는 것이다. 율법을 통해서 하늘로 분리되는 문을 찾는 일은 줄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율법 속에 그리스도가 감추어져 있는데, 그 문을 찾으라는 것이다. 누가복음 16 16절에서『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율법은 영원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으므로 율법의 효력이 끝나고, 테베가 없는 것이다. 복음에 들어간 자들은 천국에 들어가는 자들이 된다. 마태복음 11 12절에서『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비아제타이)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비아스타이 하르파조우신)』비아제타이는 침노하다라는 말이다. 여기서도 천국을 침노하는 자는 복음을 받아드리는 자들이며, 천국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천국을 빼앗으려는 자들이 있다. 비아스타이 하르파조우신은 폭력으로 훔치는 자들이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자기들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남들도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 천국은 침노하여 들어가지만 빼앗는 대상이 아닌 것이다.

 

12-13.『백성이 애굽 온 땅에 흩어져 곡초 그루터기를 거두어다가 짚을 대신하니 간역자들이 그들을 독촉하여 가로되 너희는 짚이 있을 때와 같이 당일 일을 당일에 마치라 하며』

애굽의 온 땅이라는 말은 고센 땅 라암세스를 벗어나서 애굽의 전역으로 가게 된 것이다. 즉 세상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당일 일을 당일에 마치라 하며』이 말은 욤욤욤의 말(다바르)과 일(마아세)을 마치라는 것이다. 욤이 세 번 있으므로 세 날(삼일)을 의미한다. 마아세는 아사(만들다, 창조하다)에 맴(말씀)이 붙어서 마아세가 된다. 세 날에 하늘에 들어가는(다바르) 문을 찾는(아세르) 일을 말씀을 통하여 성취하고 이루라는 것이다. 율법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율법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그리스도의 문으로 들어가라는 것이다. 그런데, 바리새인들과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의 문을 찾지 못한 것이다. 율법주의에 빠진 자들은 자기의 성을 벽돌로 견고하게 하고 짚을 넣어서 더욱 견고하게 한다. 짚을 주지 않으므로 온 세상에 돌아다니면서 짚을 찾는 것이다. 인본주의 율법주의 영지주의에 대한 지식을 찾아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대체 \하는 것이다.

 

14.『바로의 간역자들이 자기들의 세운바 이스라엘 자손의 패장들을 때리며 가로되 너희가 어찌하여 어제와 오늘에 만드는 벽돌의 수효를 전과 같이 채우지 아니하였느냐(카라) 하니라』

율법주의자들은 더욱 압박을 한다. 율법(간역자들:이스라엘 지도자)이 친다는 것은 죽이는 것과 같은 말이다. 율법을 더욱 더 강하게 지키도록 하고 있다. 참 진리의 말씀을 발견하지 못하는 자들은 날마다 벽돌을 굽고 짚을 넣어서 견고하게 만드는 것이다. 결국 자기가 우상이 되는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 교회는 인본주의 율법주의 영지주의가 점령하고 있다. 그래서 끊임없이 멍애를 짊어지게 하는 것이다. 가짜 벽돌로 만든 성전을 헐고 하나님이 주시는 새성전에서 예배해야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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